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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 "나는 형태란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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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 "나는 형태란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ㅎ씨 2024. 1. 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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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낳은 20세기 회화의 거장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렘브란트와 더불어 그들에 가깝게 유화라는 재료 사용에 있어서 완성도가 탁월한 작가로 인정받는 작가이다 (출처: creative commons by 4.0)

 

 

 

17세기 영국 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동명으로 그의 먼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베이컨은 1차 세계 대전이라는 긴박한 시절을 어린 시절로 보냈다. 그는 그 당시의 불안정하고 불안전했던 시대적 상황이 자신을 형성한 기본적인 경험이라고 말한다. "딜레당트들만이 독창성과 백지 상태를 혼동한다"는 아도르노(Th. W. Adorno)의 말처럼, 예술작품에게서 경험적 차원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통상적인 해설 중 하나인 전쟁의 폭력과 공포 그로 인한 인간의 고독, 고통, 불안의 표현이라는 설명은 그의 창작 정신의 언급들을 살펴보면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설명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컨은 자신이 본 모든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은 가족과 단절된 상태로 지속됐는데, 그 발단은 어머니의 속옷을 입어보다가 아버지에게 들킨 이후부터 시작된다. 아버지는 그를 집에서 내쫓았고 집에서 내쫓긴 그는 가족들이 머무는 집이 아닌 세상을 집으로 삼아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며 머무는 방랑자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15살, 16살 때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버지였기 때문이었을까? 베이컨의 아버지는 그의 교육을 고려하여 자신의 친구에게 위탁 교육을 부탁한다. 그렇게 유럽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는 문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지속한다. 특히 그 시기 독일에서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독일에서의 향락적인 생활이 자신의 그림에 영향을 끼쳤음을 후일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베이컨은 화가를 업으로 살아가기 전에 다양한 직종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특히 1930년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나름의 인정을 받기도 한다. 그는 과감하고 감각적인 장식과 가구의 실내 구성으로 영국 전문지에 이름을 올린다. 하지만 후일에 베이컨은 디자인에는 창조적인 독립심이 부족하다고 말하며 그것은 아주 우스운 일이라고 회상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영유하기는 했지만 사실 베이컨은 이전부터 회화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1927년부터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인 1929년에 이르는 파리 생활 기간 중에 방문한 콩데미술관에서 본 푸생(N.poussin)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그는 푸생의 <결백한 자들의 학살>이라는 그림에 커다란 감명을 받는다. 베이컨은 이 그림을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최초의 예술 작품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베이컨이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푸생이 아닌 피카소(P.Picasso)였다. 파리에 위치한 로젠베르그 갤러리(Galerie Rosenberg)에서 피카소의 전시를 본 뒤 그는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 당시 전시된 피카소의 작품은 해변을 풍경으로 기괴하게 왜곡된 육체의 형상들을 그린 디나르(Dinard)시기의 작품들이었다.

이 전시는 베이컨의 작업 정신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 전시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해변가를 배경으로 탈의실 문을 열쇠로 열고 있는 기괴한 형상의 그림을 두고 베이컨은 '실재적 리얼리즘'을 말한다. 당시 전시된 피카소의 그림은 자연재현적이지 않은 그림이기에 통상적으로 이해하기에 리얼리즘이라고 말하기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베이컨에게 그 그림은 마치 자신이 해변에 있는 듯한 감각을 전달해주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베이컨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을 전달하는 이미지로서의 리얼리즘이었다.

 

 

 "그날 본 것들은 오늘날까지도 내게 감각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 후 베이컨은 독학으로 미술 작업을 시작하고 여러 방편으로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고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외부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절망적이었던 평가와 전시로 베이컨은 그 당시 자신의 작업 대부분을 파괴해 버린다.

 

베이컨이 화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 계기는 1945년 르페르브 갤러리(Lefevre Gallery)에서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가지 습작>(1944)이라는 삼면화를 전시하고 난 뒤이다.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가지 습작>은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마지막인 <에우메니데스>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 이후 화가로서의 베이컨의 활동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가지 습작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 <-- 그림 보기

 

베이컨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가지 습작>은 당시의 시대적 맥락, 즉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이해되며 평가를 받곤 한다. 고통과 공포, 절규, 불안 등 인간의 보편적이면서도 시대적인 감정이 베이컨 작품 비평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에 반해 베이컨은 그러한 평가에 무덤덤하며 자신의 창작 정신을 한 인터뷰에서 밝힌다.

 

 

"나는 형태란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 피카소가 그랬듯이 인간의 이미지, 그러나 완전히 왜곡된 인간의 이미지와 관련된 유기적인 형태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이와 같은 베이컨의 창작 정신은 그의 다양한 작품들에서도 유사한 태도로 나타난다. 입이 그러하고 교황이 그러하고 십자가가 그러하고 나치의 상징, 하켄크로이츠가 그러했다.

"나는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라는 베이컨의 말은 그의 다양한 작품들의 창작 정신을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베이컨은 회화 못지않게 문학 작품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탐구한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책을 읽을 때 가능하다면 원어로 읽는 것을 추구했다. 번역본 같은 경우에는 원어로 쓰인 작가의 표현성을 온전하게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T.S.엘리엇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그리고 그리스 비극 작품들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시인들은 내가 그림을 그리고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아이스킬로스를 읽는 것, 그것은 나에게 이미지들을 강요하고, 이미지들이 내 안에서 솟아나게 합니다."

 

 "(사무엘)베케트와 (제임스)조이스가 말하려고 했던 바를 셰익스피어가 좀 더 시적으로, 더 정확하게 그리고 훨씬 더 강력한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깨닫곤 합니다."

 

 

35살의 나이에 베이컨은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다른 누구 못지 않게 화려하고 폭발적으로 쌓아나가게 된다. 고독했지만 경제적 어려움 없이 창작 활동을 지속해나갈 수 있었던 베이컨은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베이컨의 작업실 bacon&#39;s studio
베이컨의 작업실 (출처: creative commons by 3.0)

 

 

 

 

 

 

 "난 단지 내 본능적 욕망으로 그릴 뿐입니다. 내 뇌 안에 있는 이미지들을 정확하게 재창조하려고 노력할 뿐이지요." - 프란시스 베이컨

 

 

 

 

 

 

 

 

 

 

-참고 도서

프랭크 모베르,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 박선주 옮김 (그린비, 2015)

크리스토프 도미노, 『베이컨-회화의 괴물』, 성기완 옮김 (시공사, 1998)

프란시스 베이컨, 『화가의 잔인한 손』, 최영미 옮김 (강, 1998)

Th. W. 아도르노, 『미학 이론』, 홍승용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7)

A. N. 호지, 『서양미술사』, 서영희 옮김 (미진사, 2015)

이민수, 「프란시스 베이컨 회화의 리얼리즘 연구: 이미지의 이중성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미술사 연구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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