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읽는 미술 이야기

김환기(1913-1974):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 만큼이나 했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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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1913-1974):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 만큼이나 했을까"

ㅎ씨 2024. 1. 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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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상회화 1세대 작가로 한국의 초창기 모더니즘을 선도한 작가 김환기(Kim Whanki).
 
그의 삶의 행로는 오로지 예술로 향했기에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미국 뉴욕으로 떠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김환기는 당시 현대예술의 최전선이라고 불리는 미국 뉴욕에서 자신의 예술적 열정을 쏟아내며 독창적인 예술작품들을 그려낸다.
 
 

"뉴욕에 나가자, 나가서 싸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본 김환기의 작은 점화
2018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난 김환기의 작업

 
 
김환기라는 작가와 그의 작업을 처음 알게 된 날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8년 전, 삼성 리움미술관(Leeum museum)에서 였다. 2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눈 앞에 그의 작업이 떡하니.
 
그때 그의 작업은 내게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당시 봤었던 김환기의 작업은 그의 작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업 가운데 하나인 푸른색의 점들이 무수하게 찍힌 대형 점화였다. 내 몸을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크기, 푸른색으로만 뒤덮인 모노크롬(monochrome) 화면 그리고 그 화면을 빈틈없이 채운 푸른색의 점들. 특히 캔버스 표면에 묽게 스며든 푸른색의 무수한 점들이 주는 인상은, 언어로 표현하기엔 적절하지 못할 그런 무엇이었다. 멀리 떨어져서 그의 점화를 보고 있자면, 무수한 푸른 점들로 가득한 거대한 화면은 마치 어떤 무한한 세계로의 입장을 안내하는 듯 했다. 그것은 푸른색 점들의 미칠듯한 확장이었다. 그의 작업은 시각적으로,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경험이었다. (그 당시에는 리움미술관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진 촬영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본 김환기의 점화
김환기의 뉴욕 시기(1963-1974) 작업 중 한 점

 
 
김환기는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1913)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1933년 동경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한다. 그는 유학을 간 일본에서 서구 모더니즘을 경험하게 되고 학우들과 함께 서구의 예술적 경향들을 탐구하면서 평면 위 조형적인 실험들을 시도한다. 서구 모더니즘의 예술적 경향들을 시도하는 단체에서 활동을 하기도 하면서 단체전에 참여하고 1937년 일본 도쿄에서 첫 번째 개인전(solo show)을 열기도 한다.
1940년에는 한국으로 귀국하여 서울의 정자옥 화랑(현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명동점)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한국에 추상회화를 소개한다. 이후 그는 한국에서 활발하게 예술활동을 펼치고 한국 최초의 현대미술 그룹이라고 여겨지는 '신사실파'를 결성(1948), 3회의 걸친 단체전을 개최한다. '신사실파'의 구성원으로는 김환기를 포함해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인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 이중섭, 백영수 등이 참여하여 활동을 했다.
 

"<신사실파>라는 명칭은 김환기가 주장하였는데, 추상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그 바탕이 되는 모든 형태는 '사실'이라는 조형의식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 박병애

 
 
추상(Abstract)은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미술 양식 변화의 역사와 더불어 사진의 등장(1839) 이후 더 이상 자연을 재현할 혹은 기록할 유일한 방법이 되지 않는 시대적 상황을 맞이하여 회화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탐구와 실험 속에서 도달한 회화 양식이다. 순수추상으로 가기까지 화면에서 자연적 대상은 이제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과 해체의 대상이 된다. 대상의 분석과 해체의 과정을 거치면서 회화는 순수 조형적 요소들을 자체 내에서 탐구하며 회화를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존재 자체로 인식하고 이를 드러내게 된다. 회화를 구성하는 조형요소들과 제반조건인 물질적 재료의 특성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면서 회화는 순수 조형성의 자기만족적인 세계, 즉 추상으로 나아간다.
 
 

"모더니즘 회화의 특징은 화면 자체의 물질적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 김현화

 

"... 그림의 지시대상을 그림 외부의 세계가 아니라 그림 내부의 조건에 두는 그림, 즉 그림의 조형적 요소들을 세계 재현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그림, 이것이 모더니즘이 추구한 '순수미술'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다." - 조주연

 

"자연의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성을 지닌 존재가 되었을 때 진정한 '추상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추상' (abstract)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자연으로부터 이끌어내다', '추출하다' 이다. 용어의 어휘적 해석만 가지고는 추상회화의 정확한 개념을 설정하기가 애매하다. 미술에서 '추상'이라는 용어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구의 극단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된다." - 알프레드 H. 바

 
 
미술에서 추상이 가리키는 의미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초대 관장을 지냈던 알프레드 H. 바(1902 - 1981)가 정리한 것처럼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인간 욕구의 극단적인 실천이었다. 하지만 김환기를 포함한 '신사실파' 작가들의 작업은 추상적인 양식을 기본으로 하는 미적 실천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자연을 초월하지는 않는, 어디까지나 아직까지는  형태의 근거를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작업을 추구한다. 이를 두고 서양과 동양의 자연관, 예술관의 차이에서 오는 미적 현상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서양에서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자연 정복적이고 극복적인 태도를 보여주는데 반해, 동양에서 자연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인간이 자연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사실파' 작가들이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조형적 탐구와 실험을 하는 상황 속에서도 동양적인 정신을 고수하고 표현한,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들의 작업 속 단순화되어 표현된 자연의 모습은 실상 자연이 정복의 대상, 해체의 대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연에 대한 서정적인 태도와 분위기가 감돈다.  
 
 
김환기는 국내에서 예술활동을 하면서 서울대학교 미대 교수, 홍익대학교 미대 교수와 학장, 한국미술협회 회장 등으로 일하며 한국의 예술 교육과 발전에 힘을 보탰다. 한때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하며 예술적 발전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1963년 제7회 브라질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회화 부문 명예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1965년에는 제8회 브라질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초대되어 특별실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그 중 1점을 상파울로 근대미술관에서 소장하게 된다)
하지만 김환기는 비엔날레 참여 이후 스스로 느낀 자신의 예술적 한계와 발전에의 열망을 갖게 되고, 그해 현대미술의 최전선이라 불리우는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에서 그는 당시를 주도하던 현대미술, 즉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와 더불어 미니멀리즘(Minimalism) 등의 영향을 받으며 양식상의 변화를 시도, 탐구하며 그곳에서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대표적 작업인 대형 점화를 창작하기에 이른다. 1974년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뒤로하기까지 그는 뉴욕에서 작업을 했는데, 그 시기의 작업들을 우리는 김환기의 뉴욕 시기 작업들이라 일컫는다.
 
 

"1970년 1월 12일. 일어나니 눈이 내린다. 간밤에도 눈이 왔던 모양. 어제 시작한 oil on paper 2점. 오늘 끝내고 새로 한 점 끝내다. 진눈깨비가 날린다. 고생하며 예술을 지속한다는 것은 예술로 살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고생이 무서워 예술을 정지하고, 살기위해 딴 일을 하다가 다시 예술로 정진이 될 것일까."

 
 

환기 미술관(Whanki Museum)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故이건희 삼성 회장의 세기의 기증이라 불리우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2021)이라는 타이틀 아래 전시를 진행했다. 예약을 해야만 관람이 가능한데 모든 날짜가 매진이라 예약하기가 쉽지가 않았던 전시였다. 해당 전시에서는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김환기 작업 중 몇 점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대형 점화도 포함해서.
 
종로 부암동에는 그의 부인인 김향안(1916 - 2004)여사가 설립한 환기 재단(Whanki Foundation)으로부터 비롯해 1992년 개관한 환기 미술관(Whanki Museum)이 있다.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 여사는 그의 예술적 인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그가 자신의 열정을 예술에 쏟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그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노력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개인적으로 환기 미술관은 상당히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한데, 그곳에서 그에 관련된 서적과 도록을 포함하여 그의 작업 다수를 만날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의 작업에 한해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환기미술관 입구

 
 
 
 
 
 
 
 
 

 "예술은 심미적, 철학적, 또는 문학적 이론이 아니다. 예술은 하늘, 산, 그리고 돌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다." - 김환기

 
 
 
 
 
 
 
 
 
 
 
 
-참고 도서
윤난지, 『자연을 노래한 조형시인 김환기』(도서출판 재원, 2009)
조주연, 『현대미술 강의(순수미술의 탄생과 죽음)』(글항아리, 2017)
김현화, 『20세기 미술사 - 추상미술의 창조와 발전』(한길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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