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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비올라(1951-2024): 미국 출신의 비디오 아트 선구자

ㅎ씨 2025. 1. 2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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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서울에서는 24년 12월 3일서부터 25년 1월 26일까지 약 두 달간 K1 건물 1층과 2층, K3에서 미국 출신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인 빌 비올라(Bill Viola, 1951-2024)의 영상 작업 총 7점을 선보였다. 국제갤러리는 전시에서 선보이는 7점이 비올라의 삶과 작업세계를 핵심적으로 아우르는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비올라의 4번째 개인전이자 지난 7월 작고한 후 한국에서 열리는 첫 전시이기도 하다.
 
 

국제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Poem B(The Guest House)>(2006)

 
 
비올라는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Syracuse University)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실험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수많은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70년대는 비디오가 예술 매체로서의 가능성이 이제 막 탐구되기 시작한 초기 시점이었다. 비올라는 이 시기에 비디오 신서사이저, 전자 음악, 음향 편집 기술 등 다양한 기술들을 습득하며 비디오 매체의 활용 가능성과 그 특성들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비디오 매체의 기술적인 측면을 탐구한 초기 작업을 국제갤러리 K1 로비에서 만나볼 수가 있었다. CRT 모니터를 통해 선보이는 영상 작업인 <Information>(1973)은 영상의 송수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듯, 혹은 비디오 시스템 자체의 기술적 오류인 듯한 망가진 화면이 여러 방식으로 빠르게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제갤러리는 이를 "제작과정의 기술적 오류를 영상 매체의 물리적 속성 탐구의 계기"로써 보여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비디오 아트 작가들에게서 실험적인 요소로써 다루어지는 매체의 부정적 측면으로서의 기술적 오류는 비디오의 정상적인 화면 송출로서의 탐색이 아닌 비정상적인 화면을 중심 계기로 비디오라는 매체를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비디오라는 매체 자체의 물리적 속성을 탐구하는데 있어서 부정적 계기로서의 기술적 오류가 주요한 방법론임을 보여준다.
 
비올라는 1976년에서 81년까지는 WNET Thirteen Television Laboratory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기술(new technology)의 미학적 가능성을 연구했는데, 이 시기에 처음으로 컴퓨터 편집 기법을 시도했다. 이때의 연구에 기반하여 제작한 작업이 <Four Songs>(1976)라는 영상 작업으로서, 국제갤러리 K1 1층 전시장에 전시됐다. 4개의 영상을 하나의 영상으로 편집하여 총 33분의 런닝 타임을 보여주는 <Four Songs>는 "영상과 사운드의 조합이 빚는 은유적 화면을 통해 개인이 자연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 심리적, 감정적 역학을 서술"한다.
 
이처럼 비올라의 작업이 초기에는 매체 자체의 기술적, 물리적 속성을 탐구한 특성을 보여준다면, 시간이 지나면서는, 물론 이후 작업에서도 이와 같은 비디오의 기술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보다 신비적이고 명상적이면서 초월적인 영상 작업을 시도하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작가가 되어갔다. 이는 1970년대 중반 이후서부터 남태평양의 솔로몬 제도와 인도네시아, 일본, 히말라야 등 비서구권 국가와 오지를 여행하는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불교의 선종, 이슬람의 수피교, 기독교의 신비주의와 같은 영적인 종교적 내용에 영향을 받으며 삶과 죽음, 의식의 흐름, 자연의 순환 등 인간 존재에 물음을 던지며 인간의 보편적 경험을 상기시키는 은유로서 영상 매체의 기술적 측면을 활용해 작업을 했다.
 
 

국제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Four Songs>(1976) 스틸 사진

 
 
k1 1층 맨 안 쪽에 위치한 전시장에서는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전시에 선보였던 <Interval>(1995)을 전시했다. 2채널 비디오 작업인 <Interval>은 한 쪽 벽면에는 샤워실에 있는 나체의 남성이 아주 천천히 자신의 몸을 수건으로 닦는 모습을 상영하며, 마주본 한 쪽 벽면에서는 불과 물의 이미지와 신체 구멍을 클로즈업한 화면을 보여주는데, 대상을 인식불가능할 정도로 카오스적인 모습으로 상영한다. 특히 두 영상은 번갈아가며 상영되고 교차되는 영상 시간은 점차적으로 짧아지는데, 고요하고 차분한 영상과 카오스적이고 폭력적이라고할 정도로 무자비한 영상의 대립적이면서 교차적인 상영은 관객에게 혼란한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샤워실에 있는 나체 남성이 천천히 몸을 닦는 영상은 무언가 수도승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느릿느릿하게 몸의 물기를 닦아내는 듯한 그의 제스처는 신체를 다루지만 동시에 정신을 가다듬는 모습인 듯 했다. 그에 반해 대상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이 불가능했던 카오스적인 영상은 극단적으로 대립적인 영상으로서, 구체적인 형상을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외부적인 세계가 아닌 내면적인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듯 했다. 차분히 몸을 닦으며 정신을 가다듬지만 실제 내적인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도 가다듬을 수 없는 카오스적인 세계임을 대립적인 2채널 영상을 통해 시각화한 영상인걸까?
 


 
K3 전시장에서 전시 중인 <Moving Stillness: Mount Rainier 1979>(1979)은 공중에 떠 있는 스크린에 투사된 산 이미지와 그 아래 설치된 물 웅덩이가 조합된 작업이다. 스크린에 고정된 산 이미지는 한동안 정지 상태를 보여주는데, 상주하는 전시지킴이분께서 순간 바닥의 물 웅덩이를 한 번 흔들어준다. 순간 물의 파동에 의해 스크린에 투사된 산 이미지는 출렁이며 이전의 고정된 산 이미지가 흐트러지면서 구체적인 대상 인식이 불가능한 이미지로 현상한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물의 파동이 잠잠해지는 만큼 흐트러진 산 이미지는 다시 흐트러지기 전의 안정적인 산 이미지로 복귀한다. 
 
 

국제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Moving Stillness: Mount Rainier 1979>(1979) 스틸 사진

 
 
국제갤러리에 따르면 비올라는 해당 작업에 대해 "산이라는 이미지는 일견 견고하고 변함없는 상수의 성격을 띠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상수로서의 성격은 일련의 요소들이 그 순간 우연적으로 맞아떨어진 결과일 뿐이며, 각 변수는 제각기 독립적이고 끝없이 가변적"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갤러리는 보통 정적이고 단단한 이미지로서의 안정적인 산 이미지를 취약하고 불안정한 이미지로 제시함으로써 이미지로서의 산이 갖는 성격을 고찰하게끔 한다고 하며, 흔들리는 산 이미지를 통해 안정감의 함정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통해 생각해본다면, 해당 작업은 삶에서 안정성이라는 관념이 허구라는 점을 폭로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상 고정되어 안정적인 산의 이미지는 전시지킴이의 사소한 제스처 하나로 인해 불안정한 이미지로 변환되면서 고정성, 안정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폭로하는 듯 하다. 사소한 제스처 하나로도 일순간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것이 안정성인 것이다. 하지만 작업은 시간의 요소가 도입됨으로써 점차적으로 다시금 안정성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제갤러리는 이를 두고 "시간의 축적이 건네는 안식" 또한 작업을 통해 되짚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간이 약이다"라는 걸 가리키는 듯 하다.
 
이처럼 <Moving Stillness: Mount Rainier 1979>는 안정성의 허구를 폭로하기도 하지만 다시금 안정성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한편으론 이것이 삶이란 곧 안정성과 불안정성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진자운동과 같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마치 삶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초대받지 않은 어떤 알 수 없는 사건의 방문으로 인해 일순간 안정적인 삶이 흔들리다가 다시금 시간이 지나 안정감을 되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삶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작업에 대한 이러한 의미론적 해석과 더불어  <Moving Stillness: Mount Rainier 1979>는 작업의 구성적 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게 구조화된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전통적인 미술 작업, 특히 모더니즘 작업처럼 어떤 물리적인 작업 하나와 그것 자체 내에서 작업의 의미가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영상 작업과 더불어 그 주변의 설치와 그것이 일종의 작동을 하게끔 하는 에너지의 개입 그리고 그에 따른 시간성이 작업의 한 가지 구성 요소로 도입된다는 점 등 다차원적인 관계가 작업을 구성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특히나 외부에서의 물리적인 개입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작업으로서 작업의 실제적인 의미가 외부 요소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점이다. (이런 점은 미니멀리즘에 의해 시도된 미학적 성격이기도 하다) 해당 작업은 1979년에 소개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2025년인 오늘날까지도 어떤 유의미함을 간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비올라의 현대성을 말하기에는 과한 것일까?
 
 
 
 
 
 
 
 
 
 
 
 
 
 
-참고도서
국제갤러리 전시 리플랫
구선정, 빌 비올라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물, 불 - 바슐라르의 자연요소에 대한 이론으로 접목고찰-」, (미술사문화비평학회, 2012)
김일용, 빌 비올라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소격화' 연」, (한국기초조형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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