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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끄적이는 미술
이목하(1996-): 동시대 익명의 초상화, 인스타그램 초상화, 석파정 서울미술관 기획 전시 《이끼: 축축하고 그늘진 녹색의떼》 본문
이목하(1996-): 동시대 익명의 초상화, 인스타그램 초상화, 석파정 서울미술관 기획 전시 《이끼: 축축하고 그늘진 녹색의떼》
_K씨 2025. 11. 2. 19:41부암동에 위치하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는 현재 3개의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천경자 작가 작고 10주기이자 탄생 101주년을 기념하며 천경자 작가를 돌아보는 특별 기획전인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일본의 사진 작가 키와시마 코토리의 개인전인 《사란란》
그리고 기획 단체전 《이끼: 축축하고 그늘진 녹색의떼》가 열리고 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광화문과 대중교통으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미술관이자 그 주변에는 환기미술관이 위치해 있기도 하다. 오며가며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많이 지나쳤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해보았다. 부암동 방향으로 버스를 잘 안타고 다녀서 몰랐는데, 이번에 버스를 타고 가보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이정도 거리라면 앞으로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자주 방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입장료가 20000원이다... 문화가 있는 날에 방문했는데도 입장료가 20000원이었다... 자주 갈 수 있을까...?)
이번에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방문하고자 한 이유는 《이끼: 축축하고 그늘진 녹색의떼》를 보기 위함이었다. 특히나 참여 작가 가운데 이목하 작가의 회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목하 작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몇 년전서부터? 특히나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며 그녀의 작업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꼭 봐야겠다는 생각에 전시를 보러 갔다.


《이끼: 축축하고 그늘진 녹색의떼》는 별도의 입구가 없다. 매표소에서 바로 전시장으로 입장하면 천경자 작가의 특별 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를 보게 되는데, 해당 전시를 다 보아야 이어지는 《이끼: 축축하고 그늘진 녹색의떼》를 볼 수가 있다.
처음에는 이를 잘 몰라서 미술관 전체를 돌아다녀야 했다. 4F까지 돌아다녔는데 입구를 찾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깨달았다. 이건 첫 전시장에서의 전시를 보아야 연결되는 구조겠구나! 하고... 하지만 처음 방문하는 미술관인 만큼 덕분에 구조를 알 수 있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건물 내 전시장만이 아니라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면 바깥으로 통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 행정이나 행궁 시 임시 거처로 사용한 석파정 공간이 펼쳐진다. 몇 개의 조선 가옥이 위치해 있고 (각 가옥 마다 그 기능이 달랐다) 그 앞에는 몇 개의 큰 바위들로 이루어진 계곡 같은 풍경에서 물이 졸졸졸 흐른다. 나무 풀숲으로 이어진 길이 위로 나있는데, 그곳으로 가보지는 않았다. 단지 몇 사람이 그 길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석파정의 모습은 놀라웠다. 왜냐하면 이런 공간과 장면이 펼쳐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미술관인데 그냥 미술관이 아니었다.
문득 입장할 때 바깥에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이 생각났다. 한편으론 관광객들이 왜 이렇게 많이 온거지 싶었는데, 그 이유를 석파정을 보고서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나니 그 곳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끼: 축축하고 그늘진 녹색의떼》는 회화, 조각, 미디어 아트 등 동시대 현대 작가 7인의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7인의 작가의 작업들은 모두 흥미로웠다. 하지만 나는 이목하 작가의 작업을 보기 위해 갔기에 이목하 작가의 작업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위의 회화들처럼 이목하 작가는 회화 작업을 하는 페인터로서 특히, 주로 인물의 초상 작업을 선보이는 초상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물이 아닌 다른 대상을 그린 작업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금붕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목하 작가는 주로 인물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며,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을 페인터로 정의내리면서 다른 대상을 그리는 것보다 인물을 그릴 때 회의감에 빠지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작업에 임할 수 있음을 고백한다.
알다시피 동시대 미술에서의 동시대 작가들은 어떤 하나의 매체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회화를 하며 조각을 하고 동시에 영상을 다루며 퍼포먼스도 할 수 있다. 매체 순수성을 주요한 미학적 강령으로 삼았던 모더니즘 시기에는 작가의 정체성과 작업 매체의 경계가 뚜렷하게 고착화된 시절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일컬을 수 있는 오늘날에는 그러한 경계가 해체된다.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다채로운 작업 경향은 이러한 변화된 시대의 하이브리드적인 경향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가 이러한 시대인데, 이목하 작가는 회화 매체를 고수하며 스스로를 페인터로서 정의내린다. 이러한 작가적 태도는 고리타분한 전통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동시에 오늘날의 지배적인 시대적 조류하고는 대립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도전적인 태도를 표상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이 변하는 만큼 작가 스스로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을테지만,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분명 변덕은 아닐 것이기에 반갑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현재 스스로를 페인터로 정의내리는 작가적 태도에서는 작가 스스로의 굳건한 의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목하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해당 인물들이 작가 주변의 지인도 아니고 단지 SNS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미지를 소재로 작업했다는 것에서 문득, 이래도 되나? 싶었다.
일종의 초상권에 대한 우려였다. 가뜩이나 개인정보 관련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요즘이기도 하고 (SKT, LG, KT 대표적인 이동통신 3사 모두 개인정보 해킹을 당한 시기...) 이런 걸로 고소장?이 날아올 수도 있기에 초상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을 한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 작가 인터뷰를 보면서 초상권 문제에 대한 해결은 이미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목하 작가는 SNS에서 본인이 생각한 조건에 맞는 이미지를 발견하면 해당인에게 정성스럽게 DM을 보낸다고 한다. 제작 초기에는 많은 거절을 당했다고 하는데, 요새에는 작가로서의 이름을 알려진 덕분인지 성공률이 좋다고 한다.
특히나 본인 또래의 여성 인물에 대한 관심이 유별난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이목하 작가는 "그 사람들이 올린 셀피에 숨겨져 있는 자기표현의 장치들을 같은 세대로서 해독할 수 있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스스로 여성이기에, 그리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또래 여성이 대상이기에 나아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이기에 이에 대한 공감의 감각이 작가의 무기인 것이다. 이러한 감각에는 물론 많은 빈틈이 있을테지만 작가는 특정한 시대를 공유함으로써 발현되는 공감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그리고 이목하 작가의 작업을 보면 회화 표면이 상당히 매끄럽다. 이는 이목하 작가 회화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 유화를 매우 얇게 여러번 쌓아 올려 작업을 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대개의 유화의 사용 기법 및 느낌과는 다르다. 즉 대개 유화는, 특히 반고흐의 작업 특징으로 고려할 수 있는 유화의 사용은 물성을 두텁게 표현함으로써 강력한 물질성을 전달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강한 물성에서 나오는 휴머니즘적인 힘이 유화의 힘이라면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목하 작가는 이와 달리 얇게 여러번 덧칠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는 대표적으로 마크 로스코의 방법론을 상기시킨다. 로스코 또한 물감을 얇게 여러번 덧칠하며 작업을 한 대표적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스코가 추상화를 그렸다면 이목하 작가는 구상화를 그렸으며, 그녀의 작업은 로스코의 작업보다는 보다 매끄럽고 빤딱이는 듯한 표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목하 작가의 회화에서 유화의 두터운 물성의 느낌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림 전체 테두리의 경계선이 그러하다. 그곳에는 작가가 얇게 여러번 쌓아 올리면서 축적된 물감이 두껍게 굳어 있다.
이런 측면은 어찌보면 작업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기에 감춰진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여기서 작가의 비가시적인 수공예적인 노동력의 현장을 볼 수 있게 된다. 작가의 작업은 결과가 최대 가치를 가지는 오늘날 흔히 무시되는, 즉 너무 쉽게 인식의 자리에서 고려 되지 않게 되는 과정의 노력이 인간 행동과 결과에 기초적인 토대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회화 화면, 즉 결과물에서는 쉬이 드러나지 않는 이러한 사실은 우리네 인식을 거울처럼 비추어 주며 동기화된다. 작가의 작업은 회화란 축적된 노동력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결과란 그것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기획자에 따르면 이끼는 축축하고 그늘진 음(陰)의 세계에서 태어나며 사람의 시선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생장한다. 곧 음의 세계에서 양(陽)의 에너지 가지고 생명력을 발산한다. 기획자는 이끼의 이러한 생존 방식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며 주변의 생명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균형을 모색하는 비경쟁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끼는 저마다의 모습, 저마다의 의미, 저마다의 속도로 삶을 추구한다고 정의하며 이것이 지금의 우리와 닮아 있다고 말한다.
기획자는 이번 기획전을 통해 생존 너머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이끼의 모습처럼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는 7인의 작가의 작업을 통해 존재의 다양성이 어떻게 반영되고 표현되는지를 관객들에게 선보여주고자 한다.
내 이해에 따르면 기획자의 전시 의도는 이러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시선으로 전시를 바라본다면, 무엇보다도 갑자기 이끼가 왜 등장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기획자에게는 이끼라는 대상에게서 무언가 영감이나 자극받고 이와 같은 기획전 구상에 등장한 것일텐데, 그러한 계기적인 설명이 조금 더 설명되었더라면 이끼가 등장하는 이유에 대한 타당성이 설득되었을 것 같다. 마치, 천경자 작가 기획전의 제목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가 작가의 1976년 작품 제목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서 기원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또한 전시 설명에서는 이러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시를 보다보면 어떤 이유에서 전시 제목으로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라는 텍스트가 쓰였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럼으로써 제목의 기원과 그 타당성이 납득되며, 작가의 작고 10주기이자 탄생 101주년을 기념한다는 전시 기획 의도와도 잘 맞물리게 된다. 이러한 타당성이 《이끼: 축축하고 그늘진 녹색의떼》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미술관 방문의 목적인 이목하 작가의 회화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이목하 작가의 회화를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추후에 전시를 한다면 또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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