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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읽는 미술 이야기
팝 아트(feat. 신아방가르드): "대중적인 이미지는 결코 주제가 아니다." - 제임스 로젠퀴스트 본문
1950년대 중반에 등장한 팝 아트(pop art)는 오늘날 많은 대중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예술의 한 양식이다. 예술은 어렵고 예술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팝 아트 앞에서는 그 벽이 쉬이 허물어지는 듯 하다. 그것은 팝 아트가 다른 예술에 비해 접근이 용이한, 즉 감상이 어렵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팝 아트는 일종의 '쉬운 예술'로 통용된다. 그것이 '쉬운 예술'로 이해되는 데에는 아마 대중 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대중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추상과 달리 외견상 직관적인 이해를 한 가지 특징으로 가지는 현대 예술, 그것을 팝 아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이해와 달리 팝 아트는 미술사(history of art)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수행한 전복적인 성격의 예술이었다. 이전 미술에서 수행되었던 예술적 시도와 실천들이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탄생한 팝 아트에서 보다 더 확장되어 나타난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의 미국 추상 미술은 미술과 관객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는데, 뒤이은 10년간은 팝 아트가 그 역할을 했다." - 로런스 앨러웨이
팝 아트와 관련해서 고찰해볼 수 있는 미술적 내용들은 상당히 많다. 팝 아트의 역사적 시작서부터 당대 사회 시스템과의 관계성과 팝 아트의 특징들, 그리고 그 미학적 의미까지. 그 내용은 상당히 복잡하며 깊이 들어갈수록 밀도 높은 미학을 만나게 된다. 단순히 'TV, 라디오, 광고 등 대중 매체(mass media)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도입하여 대중 친화적인 작업을 한 미술이 팝 아트다' 라고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팝 아트가 수행한 미학적 실천이 가볍지가 않음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대중 문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했지만 대중 문화 이미지만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것, 그것이 팝 아트다.
"팝 아트는 추상표현주의가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이래 미국 미술이 항상 거대하고 거칠며 다듬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준 미국적인 현상이다." - 루시 R. 리퍼드
팝 아트의 시작은 사실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다. 1950년대 중반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한 예술적 흐름으로 평가하지만, 그 시작은 영국이다. 그리고 그 기원을 영국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구상 화가인 프란시스 베이컨(F.Bacon)의 작업 방식, 즉 사진을 토대로 작업한 사실에서 찾기도 한다. 당시의 베이컨이 복제물을 자신의 작업에 사용한 방식은 다른 작가들과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은 이미지가 복제물에 기원을 둔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베이컨의 작업들은 명확하면서도 대표적으로 에드워드 머이브릿지(E.Muybridge, 1830-1904)의 신체 움직임을 탐구한 사진 이미지를 참조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 때가 1949년에서 1951년 사이였다.
그리고 1950년대 중반, 영국 팝 아트는 젊은 예술가, 건축가, 비평가 등으로 구성되어 비판적인 활동을 한 인디펜던트 그룹(Independent Group)의 공통적인 관심사로부터 출발한다. 그들은 "'도피주의', '가벼운 오락거리', '기분전환'으로 한정되었던 팝 문화를 진지한 예술"로 다루고자 한 그룹이었다. 다른 지식인들과는 다르게 대중 문화에 대한 그들의 비혐오적인 태도로부터 영국 팝 아트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 그룹에는 리처드 해밀턴(R.Hamilton)이 속해 있었다. 리처드 해밀턴은 영국 팝 아트의 시작을 함께한 대표적인 선발 주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팝 아트의 시작은 영국이었지만 그것의 인지도적인 파급력은 미국 팝 아트가 선도했다. 미국, 특히 뉴욕 팝 아트의 시작은 재스퍼 존스(J.Johns, 1930-)에게서 찾는다. 재스퍼 존스의 작업은 미술사적으로도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당시 주류 미술의 대표격이었던 추상표현주의 미학과 충돌을 일으키는 작업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비주류 소재였던 대중적 이미지를 작업에 전면적으로 등장시켰기 때문이었다. <깃발> (1954-55), <채색된 브론즈> (1960), <지도> (1961) 등 그의 작업이 이를 말해준다. 특히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깃발>은 그의 도전적인 미학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에서 팝 아트는 비주류로 취급받으며 전위적인 성격을 가진 작업들을 선보이는 갤러리들을 통해 전시되었다. 초기 미니멀리즘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던 그린 갤러리나 루벤 갤러리, 저드슨 갤러리 등에서 팝 아트 작가들의 다수의 전시가 이루어지며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예술계는 팝 아트에 주목하며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로버트 인디애나, 제임스 로젠퀴스트 등이 선두주자로 등장한다. 그들은 그간 지속되어온 예술과 일상의 벌어진 간극을 좁히는 작업들을 선보이며 적극적으로 기존 예술에게서 소외되어 왔던 일상적 소재와 사건들을 불러들인다. 또한 예술의 독자적 영역을 허물고 삶과 예술의 거리를 좁히는데에 '반복'이라는 방법론을 사용한다. 이미지의 반복은 당시 산업 생산 체계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으로 삶의 요소를 예술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결과이다.
그들은 이미지를 창안해내지 않는다. 주변 도처에서 구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선택하고 그대로 가져와서 작업을 한다. 작가적 개성으로서의 표현이 상실된 레디메이드 이미지로서의 그들의 이미지는 격정적이었던 추상표현주의와는 거리를 둔다.
"미술은 점점 더 세상과 멀어지며 외부의 세계가 아닌 내부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팝 아트는 그 세상을 바라본다. ... 이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고, 그 이전의 미술에서와는 또 다른 심적 상태다."
"지난 세대가 자신들의 잠재의식에 다다르고자 했다면, 팝 아티스트들은 아마도 작품의 내부가 아닌 바깥으로 나가려고 한다. 나는 나의 작품이 프로그램화되고 비인격적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 로이 리히텐슈타인
팝 아트에 대한 비난은 대개 고전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비평가와 미술사가들에게서 이루어졌다. 순수미술을 지향하며 예술 자체의 자율적 성격을 극대화하여 자기만족적인 세계로 등장해야 하는 당시의 미술에서 구상적인 대중적 요소들의 등장은 비난의 대상이었다. 저속한 광고가 쉽게 반예술로 이해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미술이 대체로 신화적인 인격성으로 자신의 존재론을 구성했었다면 팝 아트는 비인격적인 미술을 대표한다. 표현주의적 개성은 팝 아트에서 제거된다. 예술에서 '예술적인 흔적'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양식화된 비인격성은 순수하게 팝 아트를 특징짓는다." - 클래스 올덴버그
팝 아트는 그간 미술이 구축해온 모더니즘적 미적 기준이나 관념과는 상충되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곧 팝 아트가 모더니즘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새로운 예술 경향이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들의 작업은 모더니즘의 진보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고전주의적인 비평가들에 의해 비난받았지만 결국 그들은 미국의 주류 예술계에서 주류로 자리잡게 된다.
팝 아트는 "삶과 예술을 다루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상업 미술은 우리의 미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재고, 그런 의미에서 상업 미술은 자연이다." - 로이 리히텐슈타인
-참고 도서
루시 R 리퍼드 외 지음, 『팝 아트』, 정상희 옮김 (시공사, 2011)
핼 포스터 지음, 『첫 번째 팝 아트 시대』, 조주연 번역 (워크룸프레스, 2021)
진휘연, 「미술과 일상성의 전치와 병합: 팝 아트와 후기모더니즘의 시작」, (한국미국사학회, 2000)
진휘연, 「미니멀리즘 조각의 비환영성: 로버트 모리스의 게슈탈트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기초조형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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